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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SO한 일상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by 오스카 와일드 in 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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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그린 그림처럼 심장이 없는 얼굴

나르시시스트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한 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현대의 대중들은 인간의 심리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미디어에서도 인격장애의 특징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형적인 쾌락주의자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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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와 욕망

도리언 그레이는 이성, 재물, 젊음, 음지의 세계 등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깊은 갈증을 느낀다.
그에게 죄책감이란 약자의 감정과 다름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변화를 마주할 용기가 없고 불편함을 감내할 인내심이 부족하기에 욕망이란 감정을 탈출구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의 에고를 짓누르며 제 스스로를 창살없는 감옥에 가둔다. 앞서 말했듯 죄책감은 약자의 감정이기에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 마다 그는 늘 왠지모를 불안감과 공포감에 시달린다.

불안한 가정환경과 다양한 사건에서 면죄부 역할을 했던 수려한 외모가 복합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을 피했고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은 전부 배척했다. 오로지 그를 떠받드는 사람만을 주변에 두었을 뿐이다.

그렇게 관계에서, 사회에서 점점 고립된 형태로 나아가 그는 자기혐오를 반복하며 늘 도피한다.
결국 자기 삶의 통제권을 욕망에게 넘겨버리고 그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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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살인자, 도리언 그레이

이 책은 욕망과 책임 중 어느 것을 따를 것인가 고민하는 삶에 대해 해답을 준다.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를 통해 인생과 영혼, 욕망과 도덕성을 시험당하는 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타락의 길로 가는 존재. 외모와 재력으로 명성을 얻지만 점차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는 그의 인생은 자기애성 인격장애자의 표본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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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장르를 결정하는건 바로 나

늘 불안하고 인생이 연극같던 때가 있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당시 내 곁에 그들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멍청한 선택의 연속과 피곤을 업고 살고 있었겠지.

꾸며진 인생은 얼마나 피곤한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신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과거의 나는 더이상 피곤한 짓을 그만 두고 담백하게 살기로 결정했다. 누군가 내게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고 그렇게 살았더니 마음의 불안이 가라앉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윤리적인 문제만 아니라 욕망에 따라 사는 삶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러줄 이들이 그의 곁을 떠나버렸으니.
페르소나를 껴야만 하는 연극같은 삶과 당당히 민낯을 드러내도 괜찮은 다큐같은 삶,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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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 책과 더불어 시계태엽오렌지를 추가적으로 보면 좋겠다.)

나의 의견은 YES! 다만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첫 번째, 인위적인 교정은 씨알도 안먹힌다.
자발적으로 필요성을 느껴야한다.
(인위적 교정을 당했던 시계태엽오렌지의 ‘알렉스’의 본성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깨달음을 얻지 못한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바질을 살해한 것 )

두 번째, 본성을 바꿀 순 없으나 이성적인 판단력을 길러 행동교정은 가능하다.

어쩌면 그들에게 행복이란 불행의 쾌감일 것이다.
그래서 교정은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하는 그 때 가능하다.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가? 게다가 본인이 그럴 마음이 없다면 무슨 권리로 그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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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그들을 질타할 이유도, 계몽시키려는 시도도 필요없다. 그들이 선택한 삶이니 그또한 존중하고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그만이다.
(바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깨달음을 주겠어! 내가 고쳐보겠어! 하는 짓은 굉장히 무의미하다. 윗 글처럼 오히려 그 자리를 털고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임팩트있을 것 이다.)

다만, 언젠가 그들이 후반부의 그레이처럼 ‘이렇게 사는게 괴롭다. 변하고싶다’라는 마음속의 무언가가 일렁인다면 그 때 진심을 다해 손을 내밀어주면 된다.

빛을 볼 수 있게 나를 밖으로 이끌어준 언젠가 그 손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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